일제시대 양심적 병역거부 '등대사(燈臺社) 사건' 80주년 전시회 개최

방태준 기자 | 입력 : 2019/09/03 [23:02]

▲ 3일 오후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야외 광장에서 일제 강점기 양심적 병역거부 '등대사 사건' 80주년 맞아 기념식을 갖고 있다.  © 뉴스인포커스TV 편집국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3일 오후 국내 최초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으로 평가받는 '등대사(燈臺社) 사건'의 80주년을 맞아 관련 사료가 처음 공개됐다.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일제 강점기 양심적 병역거부 '등대사 사건' 80주년 맞아 기념식을 갖고 오는 4일부터 29일까지 등대사 사건 재판 관련 기록 등을 공개하는 전시회를 연다.
 
등대사 사건은 일제가 1939년 6월 천황 숭배와 징병을 거부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를 체포해 수감한 일이다. 죄목은 치안유지법 위반 및 불경죄였다.
 
이 사건으로 최소 66명이 체포됐는데 이는 당시 한반도 전역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수를 웃도는 규모로 전해졌다. 등대사 사건 때 체포된 이들은 평균 4년 6개월을 복역했으며 구금된 이들 중 6명은 옥사했다.
 
'등대사'는 '여호와의 증인' 법인체인 '워치타워(watchtower)'의 번역 표현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 측은 등대사라는 표현이 당시 기관지 '파수대'의 오역으로 보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국사편찬위원회에 보관된 6천 쪽 분량의 등대사 사건 관련 기록들을 분석하고 정리해 전시회 자료를 만들었다.
 

 


이 자료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장순옥 씨가 서대문형무소에서 일본 천황의 궁을 향해 절하는 '궁성요배'를 끝까지 거부해 고문을 당했던 일, 집안 4대가 병역거부로 총 44년간 수감된 옥계성 씨 일가 이야기도 담겼다.
 
옥씨의 장·차남은 신사참배와 병역을 거부했다 감옥살이를 했고, 삼남은 일본에서 옥사했다. 해방 후에는 후손들도 병역거부에 따라 형사 처분을 받았다.
 
2017년에는 옥씨 증손자가 병역을 거부했으나 2018년 11월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놓으며 대체복무를 기다리고 있다.
 

▲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대체 복무를 기다리는 옥규빈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 뉴스인포커스TV 편집국


특히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대체 복무를 기다리는 옥규빈씨의 아버지 옥태민씨는 본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옥씨 가족이 4대로 접어든다"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행동했다"며 "특히 양심적 병역 거부라는 면에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고 검사와 주고받은 대화가 나오는 재판 기록을 보면 아주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시회에서는 재판 관련 기록 외에도 등대사 사건 시작부터 종결까지 전 과정과 일제 천황 숭배 거부자에게 가해진 고문 및 옥사자 사례, 옥씨처럼 4대째 병역 거부를 해 온 가문이 소개된다.
 
아울러 일제 강점기 당시 등대사 기능과 구성원, 사건으로 체포된 신도 명단 등을 적은 등대사 조직도, 병역거부로 조사받은 피의자 신문조서도 공개된다.
 
한편 대법 판결 전 여호와의 증인 신도 관련 병역법 위반 재판은 937건이었다. 이 중 24건이 대법 판결 이후 무죄로 확정됐다. 나머지 913건은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한국 전쟁 이후 병역법 위반으로 수감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모두 1만9천350명이다. 이들의 총 누적 형량은 3만6천824년으로 파악됐다고 이 단체는 설명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번 전시회와 더불어 13~15일 일산 킨텍스에서 전 세계에서 온 신도 1만여 명을 포함한 전체 6만 5천여 명이 참가하는 국제대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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